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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변호사 [광주일보 칼럼]소통의 어려움과 길들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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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운영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17회   작성일Date 22-04-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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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사람과 만남의 연속이고,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고립된 개인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한 성찰은 늘 어려운 숙제다. 특히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조언이나 충고를 매개로 한 소통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설익은 관계에서 어설픈 조언은 인간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심한 경우 관계 자체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 사회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 대한 인사 고과와 승진 여부를 평가할 때 교과서적인 산술적인 평가와 교과서 밖의 현실에서의 평가 결과가 전혀 상반된 경우가 있다. 교과서적인 산술적인 평가에서는 능력도 있고 아부도 잘 하는 사람이 최상의 평가를 받고, 아부는 못하더라도 능력은 있는 사람이 2등, 능력은 없으나 아부라도 잘 하는 사람이 3등, 능력도 없고 아부도 못하는 사람이 최하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수학교과서처럼 1+1=2가 아닌 경우가 많다. 능력도 없고 아부도 못하는 사람이 최하의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복지부동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꼴찌를 면하고 3등은 하게 되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현실에서의 꼴찌는 능력은 있으나 아부를 못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슬프게도 2등은 교과서적인 평가와 달리 아부만 잘 하고 능력은 없는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무능력하지만 상사에게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이 상사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조언과 충언을 서슴지 않는 능력자 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은 ‘소통과 설득의 어려움’을 약 22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한비자’나 ‘사기’와 같은 책은 시대를 연결시켜주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공감을 주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한비자는 “무릇 유세(遊說)의 곤란이란 나의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상대방의 ‘심정을 통찰’하여 상대방의 심정에 나의 말하고자 함을 잘 맞추어 끼우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방이 ‘명예’를 바랄 때 돈과 같은 ‘이익’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속물이라고 비웃음을 당하고,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돈과 같은 ‘이익’을 바랄 때 ‘명예’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한다. 한비자는 임금의 두터운 ‘애정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있는 충언을 하는 사람은 자칫 임금의 역린(逆鱗·거슬러 난 비늘, 임금의 노여움)을 건드려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애정과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설프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비자’와 ‘사기 한비열전’이 전하는 미자하 이야기는 설득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애증의 정도를 통찰’한 이후에 비로소 조언과 충고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상대방의 심정을 통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만의 정의감으로 섣불리 쓴 소리를 하면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 스스로의 경솔과 허물을 돌아보지 못한 채 세상이 자신의 정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우리 삶이 너무 세속적이라고 탓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전제조건인 상대방과의 ‘애정과 신뢰’를 확보하는 문제를 생텍쥐베리는 그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길들여짐’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서로 선택하고 받아 들이며 시간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 상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텍쥐베리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통해 길들여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인내심’과 서로를 위해 ‘소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상이 세속적이고 각박해질수록 고 신영복 선생님이 강조한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는 ‘소통’과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성찰’하는 노력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태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삶과 인간 관계에서 진정성과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길들이고(또한 길들여지고), 소통하고 성찰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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